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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과  시>  The poet and Poem with Grace Cavalieri

<시인 과  시>  The poet and Poem with Grace Cavalieri

     미국 국회도서관  녹음 방송

          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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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매릴랜드 계관 시인 Grace Cavalieri의 초청을 받고  여덟편의 내 영시를 낭송하는 <The poet and the poem>프로그램 방송에 나갔다.  되돌아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부터 원고료 심부름을 해드렸던 청파동 2가 효창국민학교 정문앞에 사시던 이어령 선생님을 비롯하여 소설가 장용학, 평론가 신동욱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들 한테서 문학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좋아는 했지만 처음부터 나는 문학에 매달릴 수 없었다. 다만 의예과 시절에 일기를 썼을 뿐이다.  본과에 올라가면서  부터는 마음을 가다듬고 의학공부와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때 쓴 일기장이나 의예과 졸업장을 형님한테 마끼고 1972년 미국으로 왔지만 이젠 그 행방이 묘연하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을 터인데…다만 1968년 2월 의과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그 당시의 의사협회 신문기자가 나에게 부탁해서 졸업소감을 쓴 일이 있었다. 재학시절에 건우회(기용숙교수지도) 학생 교양단체를 고인이 된  신 실동문과 같이 운영했던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나의 글이다. 그 후 40년간은 대부분의 의대친구들처럼 그냥 의사로만 바쁘게 살았다. 미국의 Lima 근처인  Toledo, Ohio에서 마종기 시인이 살았지만 <시를 무엇하려고 쓰는가?>생각하면서 시를 내가 쓴다는 것은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러던 나는 1995년경 부터  수필이라고 할 수있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 페블비취에 온 친구들, 센앤드루스  올드 코스에 온 친구들> 등을 미주의대 동창회가 발행하는 시계탑에 육필로 쓴원고를 보내서 발표했다. 그러다가 의사로서 은퇴후 65세가 된  2008년에 <헬로 닥터씨오>수필집을  육필로 쓴 원고를 보내고 새 철자법으로 교정을 받고 발간했다. 그후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월간 <시문학> 잡지를 광화문의 교보문고에서 구입했다. 요즈음 시인들이 어떻게 시 작품을 창작 하는지 알고 싶어서 정기 구독자가 된 것이었다. 시를 쓰자는 충동이 이때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혼자 만 그냥  작품을 쓰지말고 문단에 정식 등단을 하라고 권유하는 아내의 말대로 2009년가을 월간 <시문학>에 응모했다. 10편의 작품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신인 우수 작품상을 받고  한국문단의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그해12월 24일 내 생일에 받은 선물이었다. 이렇게 황혼의 나이에 나는 드물게 의사 시인이 된 것이다. 40여년의 이비인후과 의사로서의 경험이 시창작의 모든 바탕이 되었다. 자연히 생生과 사死를 다루는 작품이  많이 쓰여졌다. 언어의 유희보다는 체험에 의한 사물시로서 깊이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에 문덕수,박재릉, 김규화 신규호 시인들이다.


한편 응모를 권한 나의 아내는 30년동안 편지를 우리 어머니에게 (회답이 꼭 왔음) 한 달에 한 번 (송금수표와 같이) 쓰는 이외에는 절대로 자신의 글을 쓰지를 않았다. 그러나 대구의 육군군의학교 교관(대량전상자 관리, 응급처치,의무실장1968-1971)으로 군의관 복부 중 시작한 우리의 가난했던 결혼 초 부터 또 여주군, 강천면, 전기도 없던 무의촌에서 살 때도 아내는 어두운 등잔불 아래에서 문학잡지와 책을  읽었다. 전공이 그래서인지 지금도 사전보다 정확하게 내 글의 잘못된 철자법을 고쳐주고 자세히 읽고 평을 해주었다. 


우리가 Lima,  Ohio에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이사를 온것이 벌써 15년이 되었다. 2013-2015년에는 나는 서울대 미주동창회(12대 오인환 회장시)  편집위원으로 봉사했고 내 시작품을 이기준 주간이 매달 나오는 미주 서울대학교동창회의 회보의 첫면에 크게 천연색으로 올렸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로 인하여 나의 시가 차츰 더 성숙해졌다. 이어서 10년전에 미주 서울의과대학 동창회장직을 맡게되고 시계탑의 편집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 이제 10년이 되었다. 또 나는 수도 워싱턴 지역의 한국문인회의 모임,포토맥포럼, 윤동주문학회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여 글을 썼다. 한글 타이핑도  배우고 시문학에도 자주 작품을 발표했다. 나자신이 발전하기 위함이기도했다. 또 이지역에서는 영문으로 글을 쓰는 모임이 문인회의 박현숙 회장에 의하여 시작되어 조지워싱턴대학 언어학과의 김영기 명예교수의 리더쉽으로 이어갔다. 작년에  발간된 Songs In A Second Language 에도 참여했다. 이책의 출판과 관련해서 Maryland계관시인 Grace Cavalieri와의 인연이 이렇게 시작됬다. 한국문학을 워싱턴 주류 문학사회에 소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송윤정 수필가, 이광미 시인, 박숙자 소설가, 황보 한 공학박사, 김인기 시인, 임정현 시인, 강혜옥 회장을 포함한 김영실, 서나영, 김미영, 정혜선, 노세웅, 김인숙 등 참여한 여러분의 고귀한 업적이다. 지난 2월 15일  미국 최초의 대학의 하나인 해변가 Annapolis의 St, John’s College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Book Signing (사진참조)을 했고  Grace Cavalieri 리드로 황보 한 박사 , 김영기교수, 이광미 박사가 그날 자신들의 영문 작품낭송을 했다. 그후 Cavalieri시인의 주선으로 3월 15일에 김영기 교수가 초대되어 그녀의 영시와 대담을 국회도서관에서 녹음을 했다. 기록을 보면 2003년 한국인  하와이민 100주년 행사로 미국회도서관에서 최연홍시인, 김행자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고 영어로 번역한 것을 미국시인이 낭송을 해준 기록이 있다. 그때 권귀순 시인도 박남수 시인의 갈매기를 한국어로 낭송했다.  따라서 그 22년후인  2025년 3월 15일에  1세 한국인으로 영어로 자신의 작품을 미국회도서관에서 낭송 것은 이날 김영기교수가 처음일 것이다. 


그 다음 달에 나는 뜻밖에 연락을 받았다.  Cavalieri시인이 그녀가 지난 십여년간 Present하고있는 The Poet and the  Poem Program에  나를 초대한 것이다. 35분에 걸쳐서  여덟편의 내 영시를 내가 낭송하고 그녀와 대담을 하는 것을 Zoom으로 미국회도서관이 녹화하는 것이다.  Show의 기록들은 Podcast와 유튜브로 방송되고 있다. 날짜는 5월 9일 금요일 오후 1시로 정했다. 내가 1972년 미국에 온지 53년만이고 시를 쓰기 시작한지 15년 만이다. 이 녹화를 위하여 나는 실수가 없도록 준비했다. 의사로서의 미국생활의 처음 38년간은 주로 영어권의 사람들을 상대했지만 지난 15년은 워싱턴으로 이사를  와서는 교회를 가도 그렇고 거의 매일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골프도 매주 의대 동기들과 치고.  한국 교포사회에서 주로 생활하는 관계로 나의 영어대화능력이 줄었다. 언어라는 것은 매일 사용해야 된다. 아무리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문책을 쓰고 읽어도 자주 사용을 안하면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이 녹화에 실수가 없도록 준비했다. 조금씩 노년에 청력이 나빠졌으니까 우선 Zoom으로 들어오는 컴퓨터의 Volume을 높이고 2주일간 영어책만 읽었다. 역사가 깊은  The Poet and the Poem  by Grace Cavalieri에 유튜브에 들어가서 과거에 나온 시인들과 어떻게 대화가 진행되는지를 듣고 보았다. 그 낭송 속도와 발음의 정확성과 예술적 표현을 듣고 나도 연습했다. 녹화를 나는 내 서재에서 Zoom으로 하니까  배경을 정리하고 잡음이 안생기도록 외부에서 오는 집 전화선을 두 시간동안 차단했다. 또 내자신의 낭송을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도 4-5회  녹음해서 들어보고 수정했다. 이날의 녹화를 슬쩍 옆에서 관찰하려는 아내를 사정해서 딴 방으로 모셨다. 혹시 기침을 하거나, 재치기를 하는 잡음, 특히 설거질하는 소리가 녹음에 들어오면 그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밝은 색 넥타이를 오랫만에 매고 정장을 하고 잘 정돈된 세재의 테이블 앞에 앉아서 자료를 준비하고 약속시간을 기달렸다. 종이를 접는 소리도 잡음이 되니 안생기도록 조심했다. 물도 한 컵 준비했다.


드디어 5월 9일 금요일 오후 1시에 정확한 시간에  시인 Grace Cavalieri와  미국회도서관 녹음 담당인 30여년의 경력을 갖은 미스터 Mike T.가 화면에 나왔고 그는 인사를 하고 녹음실로 물러났다. 이어서 설레이는 녹음이 시작됬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하나하나를 낭송하고 그녀와 대담했다. Calvalieri 시인은 93세의 노련한 방송인자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그녀는 나이에 비하여 놀랍게도 젊은이처럼  정신이 맑고 유모어스럽고 훌륭했다. 녹화는 잘 진행되었고 마지막 작품인 미주 의대 학술대회 연회장을 묘사한 <The Most Beautiful Couple’s Dance 가장 아름다운 부부의 춤> 을 낭송하고 끝났다. 감사할 뿐이다.


대담 일주전에 여덟 편을 선택하라고 연락이 와서 작년에 미국회 도서관에서 채택된 나의 시집  <무심한구름 Callous Cloud>에 있는 8편을 골라서 책과 함께 그녀에게 미리 보냈다. 이날 고마운 마리아를 한.영으로 낭송하면서 시작하여. 영어로 <우크라이나 어린이에게 보내는 편지, 굴, 생각하는 숲> 으로 이어지고  친구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몸이 안 움직인다>, 월남전이 관계된 <흐느끼느 소리>, 제2의고향 < 라이마랜드로> 순서로 낭송했다. 육이오  사변시절 나의 이야기와  월남전이야기, 해부학교실이야기, 16세 소녀의 두개골에 대한 감사의 글, 한국의 경제적인 도약에 대하여 소개했다. 그리고 6.25전쟁후의 낙후되었던 한국의 농학, 공학, 의학, 교육제도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University of  Minnesota Project에 대한 고마운 이야기도 보냈다.무엇보다도  한글을 통한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함께 설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문학을 통하여 유투브와 Podcast방송으로 나가는 이 영상 프로그람에 1세 한국사람으로 처음 참여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나는 Grace Cavalierii 시인에게 의대 시계탑 신문과 미주 의대 시계탑발행 50주년 문집을 영어로 주석을 달아서 다음 편지와 같이 보냈다. 


My Dream (나의 꿈)

그것은 분명히 기적의 꿈입니다/지난 2월 보슬비와 같이 찾아왔어요.성 존스 대학에서, 아름다운 캠퍼스, 도서관/그리고 많은 훌륭한 연사들의 목소리와 함께 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나는 여덟살이었지요 1950년에/한국전쟁이 터지고 난 얼마후/개천가 대구동부피난 국민학교에서 구구셈을 암송할때/신발이 없었어요 74년 전 그때엔/그런데 보십시오 나는 지금 2025년에 시인이 되어/여기 미합중국 수도에 당당히 섰습니다/미국 국회도서관이 녹화하는/뛰어난 시인 그레이스 카발레리가 주도하는 내 시 낭송을 위하여 왔습니다/존경하는 시인과 함께 시를 읽으니 가슴이 뜁니다


이것은 분명히 기적입니다/축복을 받은 것입니다/달리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맑은 음성, 따뜻한 사랑, 인류애, 그리고 시의 힘이 위대합니다/나는 꿈속에 있습니다. 아주 행복한 꿈입니다/존경과 감사를 드리면서       

5/10/2025 서윤석


It must be a dream of a miracle/It started with the soft rain last February/At St. John’s College/Beautiful campus, library/and full of lovely presentations


Yes, I was an eight-year-old poor child, in 1950/During the Korean War/ I had no shoes,74years ago/Here, I am a poet, in 2025/In the United State of America/Presenting my poetry during the distinguished program <The Poet and the Poem>/Hosted by Great poet, Grace Cavalieri/ The poet I admire


It must be a dream of a miracle/I am blessed/There is no other explanation for this fact/

What the power of love, humanity and the art of poetry are! / I am still in a dream, happy dream/ With my sincere appreciation   

5/10/2025 Youn-Seok Seo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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