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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포기의 엘크



     

허공에서 수직으로 사망한 지난여름의 천둥번개

그들이 땅으로 떨어져 모두 싹으로 돋아난다면 당신은 믿겠어요?

     

저 거대한 뿔은 우주가 방목해서 걸어 다니는 풀

풀과 나무는 대지가 낳은 식물이죠 (그리고 이건 사실 비밀인데요)

저기 들판을 달리는 동물들 모두 몸들이 낳은 다년생 풀이에요 

엘크, 나, 무스, 당신, 와피티 그리고 낙타사슴, 말코손바닥사슴…

눈빛도 순한 식물성이라 이름 끝에는 항상 연둣빛 풀물이 묻어나요

몸이 낳은 풀들의 이름을 노래하듯 부르다보면

바람도 순해져서 사슴처럼 초록들판을 달리는 메아리가 됩니다

엘크들 들판 곳곳에 서서 야생난초처럼 응앙응앙 흔들릴 거예요

위로 솟은 엘크의 풀잎 가만히 만져보세요 따뜻한 나뭇가지처럼

스윽- 뒤를 돌아봐도 풀은 풀, 괜찮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것들은 뿌리대신 네발로 흙을 쥐고 자라는 풀잎들,

모두 긴 목으로 우아하게 집으로 방향을 돌리죠

솜털 돋은 풀잎이 쓰윽- 당신을 바라볼 거예요 

선물의 집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탄절 카드처럼 큰 키의 풍경이 회전할 때 

광합성은 긴 뿔을 타고 초록초록 저장 되는 거죠

     

육백 킬로그램의 거대한 풀 한포기 완성되기까지

봄에 새순을 위해 엘크는

살갗이 트는 혹한 속에서도 혈관들을 불러 모아요

지난 계절 몸에 저장한 풀씨들을 쉬지 않고 운반해요

     

허공에서 수직으로 사망한 지난여름의 천둥번개

그들은 모두 땅으로 떨어져 새싹으로 돋아나요

     

누군가 오늘 숲속에서 한 포기 엘크, 그 상큼한 식물의 성장을 보았다면

순간 그의 등산화 속에서도 실처럼 흰 뿌리 내리고

움푹 패인 발자국마다 풀초풀초 풀물 고여 들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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