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의 나이/김용미_ 2026.04.01 미주한국일보
시계가 없던 시절, 어머니의 시계는 자연이었다. 아침은 뒤란의 새가 물어오거나 수탉의 목청이 불러왔다. 해가 서편으로 옮겨가면서 시작되는 처마그림자가 하오를 알렸다. 뜰팡을 내려선 그림자는 시나브로 키를 늘리며 시간을 귀띔해 주다가 저녁 지을 시간을 알리고 돌담 너머로 사라졌다. 쏙독새가 울면 밤이 깊었으니 잠도 깊이 들라는 신호였다.
우리집에 처음으로 생긴 시계는 괘종시계였다. 그 시계가 안방 벽에 걸리고 나서도 어머니는 그림자시계를 더 의지하고 살았다. 내가 처음으로 시계를 향해 기다림을 배운 시각은 저녁 다섯 시였다. 어린이 라디오방송이 시작되는 시각었다. 밖에서 놀다가도 문득 고샅으로 퍼지는 저녁연기의 흐름이나 떼지어 나는 찌르레기를 보고 다섯 시를 가늠했다. 언덕에서 곤두박질치듯 집으로 달려와 놋대야 속의 따뜻한 물에 손 담그고 라디오방송을 듣던 시간, 그때는 날마다의 다섯 시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걸 몰랐었다. 시간이란 무한하고 달콤한 것인 줄만 알았다.
혼자 도시로 나가 학교에 다니면서 나의 시간을 알려 주던 시계는 사발시계라고 부르던 자명종시계였다. 아침마다 난타되는 알람소리에 소스라쳐 일어나면서 시간이란 유한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시작되었다. 산기슭에 피고 지는 싸리꽃이나 칡꽃을 보고 씨앗의 파종시기를 가늠하며 살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