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목이 자라났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천장에 닿을 만큼 쑥쑥 길어져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빠르다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다
빠르게 빠르게
시간은 굉음의 바퀴를 굴렸다
동물원 같은 곳으로 가려나보다
기린처럼 매여 어슬어슬 풀을 뜯어야지
사람들이 몰려와 손가락질을 하면 더 부지런히 뜯어야지
이런 틈에도
목은 계속해서 자라나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다 높은 것은
천장을 뚫고 허공 가운데 쑥쑥 길어져
하늘은 푸르다 푸른 것은
슬픔으로 가득 차올라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보이지 않고 어디론고 실려가고 없고
목은
나의 목은
괜스레 먹먹해진 목청을 가다듬고 앉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만 불렀다
심야 식당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
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물을 마신다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내가 없는 사이
물을 한모금 마시고 갔다
긴긴밤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컵은 반쯤 비어 있고
아니, 반쯤 차 있고
참으로 이상한 일
컵은 조용히 일러주었다 나를 찾아온 누군가
빈 식탁 앞에 한참을 앉았다 갔다고
말 못한 속내를 다독이듯 물을 따라 한모금 삼키고 갔다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나는
그를 알 것만 같고
타는 표정을 몸짓을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참으로 이상한 일
한번은 더 찾아오리라
그 누군가
공연히 기다리는 이의 마음이 되어
끓는 자리에 누워
물을 생각한다 한 파리한 입술이 스민 물을,
고작 물을
한모금 마신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내 집에 왔다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어느새 혼곤한 잠이 들었다
손잡이
손잡이를 잡는다 그가 잡은 것을 그녀가
그녀가 잡은 것을 그가
잡는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는다
잡았다 놓는다
그러다보면
문은 스르르 열리곤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아귀힘을 풀곤 하는 것이다
문의 순순한 가슴팍을 두드리며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손잡이가 돌고 도는 사이
손들은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함께 가요 우리 문 저편 그럴듯한 삶을 시작해봐요
그러다보면
남몰래 열이 든 손잡이도 그만
손이 되고 말 것 같지만
꼭 쥔 주먹을 풀고 엉거주춤 하나의 주머니 속을 파고들고도 싶지만
손은, 아니 손잡이는
그러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깡통
걷어차면 소리가 난다
울음보다 웃음에 가까운
소리는 그럴듯하다 어디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표정
지금껏 궁리해왔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갉힌 뒤통수를 응시하는 일 따위
없는, 텅 빈
사람을 원치 않아요 진심입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재빨리 찌그러질 것 우스꽝스럽게 나자빠질 것
울음보다 웃음에 가까운
지금껏 궁리해왔다 버리는 일을 골몰해왓다
나로 인해 깡그리 버려지는
나를
주워 들면 약간의 물기가 돈다
불투명한, 그리고 미지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