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강성남
8공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은 세계 최고의 랜드마크시티가 될 것입니다
갯벌을 메워 도시를 세운 인천경제자유구역
달빛축제공원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시면
정면으로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이에요
3층 라운지에서 내리면 분홍 봉투가 보일 거예요
갖고 싶은 사랑을 골라 담으시면 됩니다
손만 내밀면 물결이 출렁이는 오션파크 하버뷰
바다는 무게가 아닌 물빛으로 분양가를 매겼다
오늘의 장세는 지중해가 원산지인 초록 킹크랩
사리와 조금, 간조와 만조
물수리와 쇠제비갈매기 모래 속에서 진주를 캔다
개펄에서는 물때를 잘 알아야 한다
바다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엽낭게다
조그만 기척에도 재빨리 치고 빠져나간다
대왕문어와 주꾸미, 같은 연성동물인데
대출방식도 상환방식도 달랐다
피뿔고둥 껍데기가 집인 줄 알았던 우리는,
보트피플이 되어 한류성 난바다를 건너야 했다
인천 앞바다를 분주히 오가는 배들
요트인 줄 알았는데 고래였다
지느러미 싱싱한 상어들이 서해로 몰려든다
새로운 태양이 거대한 바다를 들어 올린다
우리 집 시계들은 시간이 저마다 달라요
엄마, 지금 몇 시나 됐어요?
자명종이 울지 않아 늦잠을 잤어요
7시 13분이구나
엄마, 그 시계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다구요
그럼 지금이 몇 시라는 말이니?
거실 벽시계는 8시 13분인데
부엌 전자레인지는 8시 17분이에요
시계 밥 주는 걸 잊고 있었구나
어머, 이 시계는 네가 다섯 살 때 밥 줬는데
그새 15년이 지났단 말이니?
시간이 약이라면 쉬었다 가게도 할 텐데
휴대폰을 꺼 둔 게 잘못이에요
엄마, 제가 아껴둔 시간 못 보셨어요
글쎄 어디로 숨었는지 찾아보렴
세탁기 속에 숨었는지 열어보렴
엄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열 살 때는 스무 살을 기다리고
스무 살 땐 서른이 오기를 기다리지
서른엔 마흔이 되면 좀 더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하지
얼른얼른 태어나야지무
럭무럭 자라야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시간을 아껴야 하지
삶이라는 문은 항상 열려 있단다
밤사이
복숭아밭이 분홍으로 장관을 이루었구나
시간을 아끼면 꿈을 이룰 수 있나요?
그럼그럼, 목표를 이루는 동안 행복이 따라오겠지
엄마, 지금 태평양 건너 마을에서는
트럼프가 앞서니 바이든이 앞서니...
트럼펫이 이기면 어쩌고 바이올린이 이기면 저쩌고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네요
일본이 원전수를 방류하면 인천 앞바다 색깔도 변할까요
집집마다 방사능 진단 키트가 필요하지 않겠니
시간이 가면 많은 것들이 변할 줄 알았는데
미얀마 봉제공장에서는 시다공 시급이 600짯이라는구나
소녀가장 손에 가계의 생계가 달렸다는구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랑해주렴
그런데 이 검정 스타킹에 누가 구멍을 낸 거야?
얘, 이 소리 들리니? 시간이 오는 소리 말이야
상당히 가까이 다가오는 이 소리 들리니?
사람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일생을 바쁘게 뛰지
일생보다 금리가 높다는 연애에 대해 들어봤니?
저는 집을 떠날 때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어요
맹세한다는 건 미련이 있다는 말 아니니?
맞아요, 사실은 무척 돌아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모두 미래만 기다리고 있잖아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 속을 건너고 있지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해는 날마다 동쪽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실은 한 번도 제자리를 떠난 적이 없단다
만월산 중턱에 서 있던 해가
주왕산 정상에서 떠오를지 누가 알겠니
서둘러라! 늦지 않게
강성남 / 1967년 경북 안동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냄비 속의 여자」 당선. 2018년 「방아쇠수지증후군」 외 2편으로 제26회 전태일문학상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현재 《포엠피플》 편집위원.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