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신문에서 읽은 회원 작품

공개·회원 57명


잃어가는 연습

2025-10-30 (목) 07:47:36 문영애 워싱턴문인회, VA

궁싯궁싯하며 도무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던 더위가 시월의 문턱에서 꼬리를 내렸다. 바늘 끝 같던 햇살도 연해지고 스치는 바람은 탄산수처럼 시원하다. 기온이 조금 내려간 것 뿐인데 마음은 이미 서리와 매서운 바람을 떠올리게 된다. 가을 탓일까? 아마도 감나무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LA에서 묘목을 구해 심은 지 십오 년째인 단감나무는 이태째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차고 왼편에 서 있어 드나들며 자연히 눈길이 간다. 오월 어느 날 노란 별처럼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유월 초가 되면 꽃진 자리에 아기 엄지발톱만 한 열매가 조랑조랑 매달리면 그 귀여움에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무더위에도 동글납작한 어린 감은 무럭무럭 자라고, 하루하루 더 단단해지며, 감잎의 한쪽 표면은 들기름을 바른 듯 윤이 난다. 더위 설핏해지는 구월이 오면 잎에도 열매에도 가을 색채가 슬쩍 스며들기 시작한다.


10월 말 감나무 가지는 진한 주황색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축축 늘어진다. 대지의 신, 자연의 신, 계절의 신, 풍요의 신을 다 불러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진다. 대가 없이 받는 풍성함의 환희라…


29회 조회
61회 조회
ree

31회 조회
39회 조회
워싱턴문인회 로고_edited.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