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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된다. 1인칭과 2인칭, 착하거나 못 된 3인칭들 나머지는 배경이거나 세트거나 이름도 없고 상관도 없는 잡다한 것들, 4인칭이다 아무도 나에게 무례한 적 없다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구다 옷장이면서도 옷 한번 배불리 품은 적 없다 나는 행인이다 하지만 한 번도 갈 길을 간 적이 없다 거리에서, 편의점에서 사람들의 무표정은 배역을 받지 못해서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다시 1인칭이다 내 곁에는 2인칭도, 3인칭도 없다 그들은 각자의 방문 안에서 1인칭으로 살고 있다 나에게 그들은 4인칭이다 그들에게 나도 그렇다 문을 열고 입을 열면 저절로 인칭이 생기겠지만 4인칭끼리 말을 섞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 밤이면 마음속에 구덩이를 파고 참았던 것들을 깊게 묻는다 외로운 별이지만 아무 때나 빛날 수 없다 바람 분다고 누구 앞에서나 몸을 뒤집고 속을 보일 수도 없다 4인칭은 장르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https://youtu.be/XxB2Nf6i_5Q?si=Y-sYQ3v57P7mfy-R

4인칭에 관하여/윤석호

영화가 시작된다. 1인칭과 2인칭, 착하거나 못 된 3인칭들 나머지는 배경이거나 세트거나 이름도 없고 상관도 없는 잡다한 것들, 4인칭이다 아무도 나에게 무례한 적 없다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구다 옷장이면서도 옷 한번 배불리 품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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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수필가 설날은 일 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동지의 팥죽에 들어 있던 새알심의 쫄깃한 맛이 입안에서 맴돈다. 설날은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빠진다는 풍습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며칠 동안 준비한 음식과 제기를 병풍 앞에 있는 상에 올려놓고 차례를 지내면서 설은 시작된다. 재수가 좋아 퇴주잔의 알딸딸한 맛을 보면 그날은 온종일 천국에서 산 거나 진배없다. 차례가 끝나면 쇠고기 국물의 떡국에 세상에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때다. 웃어른에게 세배하고 나면 덕담보다는 세뱃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친척과 동네 어른에게 세배하면 집집이 내놓는 가래떡과 조청, 인절미와 동치미, 맛있는 음식에 배가 남산만큼 불러도 좋았다. 친구들과 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논이 웅덩이에서 썰매 타기나 팽이 돌리기에 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설빔의 옷고름은 왼쪽, 바른쪽을 분간하지 못해 제멋대로 늘어졌고 버선의 대님은 아예 주머니에 넣고 바짓부리를 접고 다녔다. 다 저녁에 진흙으로 얼룩진 설빔으로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의 꾸지람으로 꿀밤을 머리로 받아먹기가 일쑤였다. 저녁나절에는 윷판에 동네가 시끌시끌하고, 저녁상을 물리면 토정비결로 한해의 운수를 알아봤다. 나같이 미국에서 산 세월이 고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길어서 더욱 고향이 그리운 때다. 이제는 추억 속에만 아련하게 남아있는 설날의 풍경일 수밖에 없다.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이 지난 지도 벌써 25년이나 된다. 폭죽의 요란한 굉음과 샴페인의 달콤한 맛과 함께 2025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어렸을 때 사용했던 단기로는 4358년이다. 올해로 6·25 전쟁이 발발한 지가 어느덧 75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남북은 긴장을 멈추지 못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몹시 저리다. 일 분이 60초, 한 시간이 3,600초인데 하루가 몇 초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하루 24시간에 3,600초를 곱하면 86,400초가 답이다. 그렇지만 지구가 시속 1,000마일로 자전하는 시간은 정확하게 23시간 56분 4초이기 때문에 하루는 86,164초가 정답이다. 지구가 해의 궤도(67,000마일)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은 365.25일이다. 일 년 하고 하루의 1/4(6시간)이 더 많아 4년마다 2월에 윤달을 만들었다. 동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음력의 한 달은 29.53일이다. 양력과 계절을 맞추기 위해 3년에 한 달, 8년에 석 달을 윤달로 끼워 넣는다. 올해의 음력 윤달은 유월이다. 2025년은 육십 간지의 마흔두 번째 해인 을사년(뱀띠)이다. 우리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을사늑약이 120년 전인 1905년에 체결됐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버지는 한 나라의 이름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격동의 시대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겪었다. 다 지나간 얘기라서 한가하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 시대를 되돌아보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러나저러나 새해가 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올해의 지구 인구가 82억을 훌쩍 넘었다. 엄청난 숫자다. 예수가 탄생했을 무렵에는 세계 인구가 2억이었고, 1800년에야 겨우 10억으로 늘어났다. 1900년에 16억을 넘어 1950년에 25억, 1980년에 44억, 2000년에 61억이었다.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30년에는 90억이 넘을 거라고 한다. 지구의 지름은 12,742km이며 둘레는 40,075km이다. 80억의 사람이 양팔(평균 1.5m)을 벌려서 서로 손을 잡아 지구의 적도를 따라서 서면 세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한다. 육지의 사방 1km 안에 53명이 산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예수가 밀레니엄에 재림하려다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다음 밀레니엄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같다고 사도 베드로가 간청했다고 한다.    연말연시에도 한시도 쉴 사이 없이 정치 분열, 종교분쟁, 자연 재난 등 슬픈 소식뿐이다. 이런 모든 것은 사람이 너무 많아 서로 부딪치며 살다가 보니 마찰이 일어나고 삶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인구가 가파르게 늘면서 환경 파괴는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지구상의 인구가 야생 연어보다 일곱 배나 많다‘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많던 연어가 사라지게 되자 양식으로 수요를 간신히 채우지만, 연어 고기 1kg을 양식하기 위해 사료를 3kg을 먹인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글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놀랐다. 선진국에서는 인구보다 차량이 더 많다. 이 차들이 움직이려면 적지 않은 연료가 소모되며 모두 이산화탄소가 아니면 미세먼지로 변해 공기를 오염시킨다. 석유도 50년 안에 바닥이 난다지만 다른 자원은 그 전에 고갈이 날 거라고 해서 걱정이다. 한 해에 수백 종의 flora*와 fauna*가 멸종한다. 가뭄으로 바닥이 쩍쩍 갈라진 호수, 불더위로 불타는 산림, 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빙하, 해수의 온도 상승,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이젠 더는 숨길 수가 없다. 지구 표면의 70%인 바다에는 플라스틱, 산업 잔재, 퇴적물로 가득해 물고기가 살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언젠가 해변에 죽은 고래를 해부했는데 위장에서 24kg이나 되는 각종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또한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잡은 물고기를 정밀 검사한 결과 건강에 위험할 정도의 플라스틱 미세 분자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2050년에는 플라스틱이 바다의 물고기보다 더 많게 될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가 해산물을 먹는 게 아니라 이젠 플라스틱으로 변조된 음식을 먹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초한 공해가 총알보다 훨씬 위협적이라고도 말한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가 온통 쓰레기로 변해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은 한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여 손을 볼 일이다. 그게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자 내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 Fauna(동물군) * Flora(식물군)        수필가, 소설가 워싱턴문인회 회원 usajae@gmail.com

<해외기획-워싱턴 문인회> 새해를 맞이하며/이재훈

이재훈 수필가 설날은 일 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동지의 팥죽에 들어 있던 새알심의 쫄깃한 맛이 입안에서 맴돈다. 설날은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빠진다는 풍습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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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thing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 Shakespeare At Johannesburg airport on February 2, 2014, while waiting to be picked up to go to a hotel, I was trying to count how many airplanes I had taken in my life. I could remember 32 countries and at least 50 different cities. I was not sure whether I should be thankful for all those past trouble-free trips or be saddened by what I was still facing. My original itinerary had been to depart Washington, D.C. on Saturday morning at 10 a.m. and arrive in Maseru, Lesotho on Sunday afternoon via Addis Ababa, Ethiopia and Johannesburg, South Africa. By this time Sunday night, I was supposed to have already checked in at my hotel in Maseru and been getting ready for work on Monday. Instead, it was Sunday night and I was in Johannesburg. I had arrived via Addis Ababa and Dar Es Salaam, Tanzania. While checking in my luggage in Dulles airport, I was told that my flight would be delayed a little bit. As I had a layover of more than three hours in Addis Ababa, I was not concerned much at that point. As the delay got longer and longer, I started to worry. After more than two hours I argued with the airline gate agent about rerouting my itinerary as I would miss the connection flight. But the agent was adamant and said, “Don’t worry. You will still have a chance to catch the connection flight. Even if you miss it, you can find many routes in Addis Ababa.” I missed my connection in Addis Ababa, of course, and found the airport overcrowded with so many others who had missed theirs as well. At the airline counter, people who obviously were very tired from a long flight were anxiously waiting in line; soon I became one of them. When it got to my turn, I was first offered an overnight stay at a hotel there and then a flight the next day at the same time as my original connection, which meant that I would have to miss work on Monday as I would arrive in Maseru in the late afternoon. Since I insisted on finding another route to make it to work on Monday morning, she found the route via Dar Es Salaam that I was on. This route would allow me to arrive in Johannesburg on Sunday evening and then I could take a 6 a.m. flight to Maseru. When I asked about my luggage, she comforted me by saying that it would arrive in Johannesburg. Then, I ran to catch my flight. After about a three-hour flight from Addis Ababa, I arrived at the airport in Dar Es Salaam. They required everyone to show their passports to reprocess airline tickets for their connecting flights, which seemed quite unusual. In front of a small transit counter staffed by just two agents, people were pushing to hand over their passports first since there was no proper waiting line. One agent collected all the passports and tickets, and the other collected all the baggage check receipts; then, both of them disappeared after saying just “WAIT!” While waiting, I tried to find a Wi-Fi hotspot so I could inform my colleagues of my trouble. Some people I asked looked at me and wondered, “What’s Wi-Fi?” and then a guy said to me, “There’s no Wi-Fi in this airport.” After a while, the agent who had taken my baggage check receipts came back and said to me, “I couldn’t find your luggage.” And then the agent who had taken all the passports and tickets returned, and gave everyone back their passports and reissued tickets. “At least I received my passport and tickets,” I thought, dismissing the worry about my luggage. Once I left the transit counter, I was able to find a business lounge where Wi-Fi was available. It overjoyed me I could email my colleagues about my journey and promised to inform them what time I could arrive in Maseru once I found out at Johannesburg airport. From Dar Es Salaam to Johannesburg, the flight with South African Air (SAA) was quite pleasant with a good selection of movies. I chose Gravity  and, by the time I had finished the movie, the plane arrived in Johannesburg. At the baggage carousel, I waited for my suitcases until all the other bags were picked up. When I asked some agents there, they told me that I should go to the airline desk to report my luggage as missing. So I went to the SAA desk and was told that it was Ethiopian Air’s responsibility since I had flown out from D.C. with them. She added kindly that the SAA desk couldn’t even track where my luggage would be. Then when I asked about my flight to Maseru the following morning, she said to me, “Sorry to tell you this: your ticket from Johannesburg to Maseru got cancelled in Addis Ababa when you were rerouted. If you want to go to Maseru, you have to buy a ticket.” The agent also said that since my ticket was issued and rerouted through Ethiopian Air, I had to go to their desk to find out the details about the cancelled flight to Maseru. When I went to the information desk to ask where the Ethiopian Air desk was, the lady at the information desk, whose name tag said ‘Jamie,’ told me that it would be open only for a few hours during the day since they had only one flight at 2 p.m. daily; so I would have to wait until the following afternoon if I wished to talk to them. I felt like Sandra Bullock in the movie Gravity  where she faced problem after problem while in space. I was about to collapse. As if Jamie noticed the seriousness of my problem, she asked me whether there would be anything else she could help with. Once I explained to her my situation, she comforted me by saying that she could recommend a good hotel at a decent price, informing me that a big mining conference had made all the big hotels either fully booked or hike up their prices. After she made a few calls, she told me that a hotel driver would come and pick me up in about half an hour. Then I asked her, “How would I know who it is?” She smiled at me and said, “Don’t worry. I’ll walk with you when he comes.” While waiting for the hotel driver, I walked around to find a store where I could buy necessary items to survive overnight without my luggage. When I came back to Jamie, she told me that the driver was running late due to traffic. So I sat down on a bench next to a window. It was already quite dark. My phone was dead and since I didn’t wear a watch, I wasn’t sure how late it was. I opened up my computer to check the time. It was close to 9 p.m. and then, all of a sudden, I felt so hungry and worried about my family who might be waiting for my call. When I started struggling to find a Wi-Fi signal to communicate with my family and colleagues, Jamie called over to me.  A Caucasian guy with a military look had shown up to pick me up. After saying a BIG thank you to Jamie, I followed the driver to a parking lot. He introduced himself as the owner of a hotel called Blue Mango. Then, he talked about how he started his business with his wife just about a year ago and continued his story while driving. Originally from England, he met his wife here and while he was away in a war, his wife prepared this business by remodeling the guesthouse in his house. Ever since they opened up, the business was booming and they had added more rooms in that guesthouse. He seemed so proud of his hotel. His hotel was more like a small B&B. It had a beautiful garden, though. His wife was cooking in a small kitchen with their children. He led me to a windowless 8 ft. by 8 ft. room that had a tiny sink and shower for a bathroom. “Well, I would stay here only for six hours as I have to catch an early flight. Besides, at least they have free Wi-Fi,” I thought to myself. The next morning, I left for the airport at 4:45 a.m. I ended up having to pay for the one-way ticket from Johannesburg to Maseru. I finally got on the plane and arrived in Maseru at around 8 a.m. From when I left my home at around 8 o’clock on Saturday morning, it was a more than 36 hour journey. And my luggage still hadn’t arrived. I went to the central bank for my work project wearing the same yoga pants and gray t-shirt I’d been wearing since I left my home on Saturday morning. After work I wished to buy a few clothes but I was told that all the shops in Maseru close at around four o’clock in the afternoon. The next morning, I was about to go out for shopping to buy some clothes after finishing urgent work at the central bank; the central bank’s project manager came with a big smile and said to me, “I have good news for you.” Then, the central bank’s driver took me to the airport to get my luggage. I felt euphoric when I saw my luggage at the airport. The lady at the Maseru airport baggage claim center, whom I reported my lost luggage to when I’d arrived the day before, said to me, “You are so lucky. I didn’t imagine your luggage would arrive here as your rerouting sounded so complicated.” At the moment it felt a little ironic hearing the word ‘lucky’ after having experienced this much trouble and also that I was so thankful for nothing new but my old luggage. On the way back from Maseru to home I finished reading Alan C. Fox’s book, People Tools: 54 Strategies for Building Relationships, Creating Joy, and Embracing Prosperity,  which I bought at the Dulles airport while waiting for the delayed departure. In one of the chapters, titled “Green Grass Now,” Fox shared his experience: “In one group exercise, I was asked to write down the most important persons or things in my life. I did first, then second and up to the tenth. Next I was asked to imagine the tenth item disappearing; then the ninth, the eighth. By the time I imagined #1 vanishing, I cried. The entire group became a circle of tears. Then the leader asked us to imagine #10 coming back into our lives. Then #9. By the time I reclaimed #1, whatever it was, I felt euphoric.” It is a week before Thanksgiving. I hope everyone had a year full of harvest. In case of only a little harvest or even no harvest at all this year, I wish all of us could be thankful for the blessings of what we haven’t lost. (November 2014) (Author's note) My literary journey started with this essay. In November 2014, I happened to see the annual contest announcement by the Korean Literary Society of Washington (KLSW) and wrote this in Korean on the final day of the contest and submitted in a rush. Since then, I've been writing essays in both Korean and English as a member of the KLSW.

Thanksgiving

“There is nothing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 Shakespeare At Johannesburg airport on February 2, 2014, while waiting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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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_RPWj4wVVk?si=mOO1Uh26iKCQ4R2u

무궁화위성 1호 발사 카운트다운/황보한

무궁화위성 1호를 진두지휘했던 황보 한 박사의 자서전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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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밥통                                                                                         권향옥 부엌 귀퉁이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고장 난 밥통 벌써 엿새째 저러고 있다 십수 년 전 옅은 미색 예쁜 자태로 우리 집에 처음 와서 완두콩밥 강낭콩밥 현미밥 번갈아 가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묵묵히 따스한 밥 지어 먹이며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던 너 어느 날부터 푹 푸욱 깊은 한숨 뿜으며 고뇌도 하고 삑 삐익 못 견디겠다고 고함도 지르며 막힌 숨구멍에 답답해 눈물도 흘리고 생쌀을 보이며 데모하더니 드디어 조용히 멈춰버렸다 분신처럼 함께한 긴 세월 고장 난 너를 버릴 수 없어 나는 아직도 구석에 너를 간직하고 있다 매일 버리라고 성화하는 남편 그러나 오늘도 주저하는 나 매일 아침 약으로 하루를 여는 내게 오늘 네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만 가야지

고장 난 밥통/권향옥

고장 난 밥통 권향옥 부엌 귀퉁이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고장 난 밥통 벌써 엿새째 저러고 있다 십수 년 전 옅은 미색 예쁜 자태로 우리 집에 처음 와서 완두콩밥 강낭콩밥 현미밥 번갈아 가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묵묵히 따스한 밥 지어 먹이며 무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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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순 이 꽃을 밟아도 되나 분홍으로 흥건한 길 위에서 머뭇거린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별들이 진 거리에서 꽃들이 속절없이 나무를 떠나고 있다 이 꽃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 디딜 틈 없는 꽃잎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열매를 꿈꾸며 찬바람 속 서둘러 꽃피우고는 잎을 위해 온전히 길을 내주는 꽃잎 어머니로부터 내게 온 꽃 같은 시간이 내 아이에게로 다시 가 꽃이 되듯이 한바탕 바람 불어와 뒹구는 꽃잎 오롯이 나무를 떠나는 그의 등에다 바람이 짧은 문장을 흐려 쓰고 간다 잘 가라, 어여쁜 꽃 Esthetics of Flowers Kwi Soon Kwon Is it okay to step on these flowers? I hesitate on the street soaked in pink. Like rain drops falling, On the street where stars have disappeared, Flowers are leaving trees, hopelessly. How do I walk across such flowers? I lose my way, standing among petals Scattered with no room to step between Dreaming of berries, Flowers hurry to bloom in cold wind, And don't hesitate to make way for the leaves. just as the time, as precious as flowers, that came to me from my mother, Goes to my child and turns back into flowers. Flowers petals readily leave trees and Tumble in the gusts of wind. On their backs, The wind scribbles a short sentence before going away; Farewell, pretty flowers.                             ------ Blister ,  Kwi Soon Kwon Click to purchase-->    Blister: Kwon, Kwi Soon: 9798313153650: Amazon.com : Books

꽃의 미학

권귀순 이 꽃을 밟아도 되나 분홍으로 흥건한 길 위에서 머뭇거린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별들이 진 거리에서 꽃들이 속절없이 나무를 떠나고 있다 이 꽃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 디딜 틈 없는 꽃잎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열매를 꿈꾸며 찬바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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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정두현 흰 붓에 먹물 듬뿍 찍어 마음 다음어 우주를 그렸다 먹물이 다 하도록 그리고 그렸다 화선지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산도 물도 없고 하늘엔 별도 없더라 안개 자욱한 여백뿐이더라 시향 제 15집 2021,  p. 130 사진출처: https://www.brightday-s.com/

꿈/정두현

꿈 정두현 흰 붓에 먹물 듬뿍 찍어 마음 다음어 우주를 그렸다 먹물이 다 하도록 그리고 그렸다 화선지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산도 물도 없고 하늘엔 별도 없더라 안개 자욱한 여백뿐이더라 시향 제 15집 2021, p.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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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에미다  김은영 나의 산맥들이 내 바다에서 솟아올랐고  나의 바다가 너를 낳았다  숲으로 내가 숨을 쉬듯   네 가슴에 허파를 심어 주었다  산맥들이 나의 등뼈와 골격을 이루듯  너에게 척추와 그곳에서 뻗어나는 팔다리를 주었다 흙과 바람이 나의 산과 들을 채우듯  살과 근육으로 너의 뼈를 채워주었다  나의 늪지대가 순환의 정화시스템이듯   너에게도 간과 콩팥을 넣어 주었다  내가 내 속에 기거하는 모든 생명을 탄생과 죽음의  순환으로 키워가듯  너에게 입에서 장에서 배설의 순환시스템을 넣어 너를 키운다 그런데 너는   아마존을 태워 내 허파를 자르고   산을 폭파하여 내 살을 흩트리고  바다에 쓰레기를 버려 내 자궁을 더럽히고 늪지대에 유전을 박아 내 소화기관을 막는구나   나의 바다는 광대해서 무엇이든 맑게 �할 수 있었다 나를 파먹고 소화되지도 않는 배설물들로  내 자궁의 양수마저 구정물로 만드는구나!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아느냐?  무엇이든지 너희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다시 네게 들어간다  네 배꼽의 탯줄은 아직도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김은영 문인회> http://dc.koreatimes.com/article/20240314/1506150

내가 네 에미다/김은영

내가 네 에미다 김은영 나의 산맥들이 내 바다에서 솟아올랐고 나의 바다가 너를 낳았다 숲으로 내가 숨을 쉬듯 네 가슴에 허파를 심어 주었다 산맥들이 나의 등뼈와 골격을 이루듯 너에게 척추와 그곳에서 뻗어나는 팔다리를 주었다 흙과 바람이 나의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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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녁을 불러냈나요?                                                        정혜선 저녁은 벌써 가고 없군요 신던 양말을 소파 밑에 벗어 놓고 기름 낀 하루를 구정물에 불려 놓은 채 어질러진 식탁 위로 허물어진 저녁은 물의 얼룩만 남기고 갔네요 온종일 나는 저녁 향해 저물었는데 캄캄해진 두 손으로 투항하듯 보듬는 어스름 백지 위로 몰려드는 우두커니를 흘려 써 주길 바라요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에 정신이 팔려서예요 뜨겁게 일어나는 휜 문장을 언뜻 읽어낼 듯도 했는데 냄비 뚜껑을 밀고 올라온 하얀 수증기로 푹푹 마음만 자욱하고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지만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없어요 차를 마신 후 잔에 남는 찻물 자국으로 미래를 읽는 점쟁이가 있어요 어제 집어삼킨 시간을 오늘 토해낸다 해도 쏟아지는 문장은 새것이 아닌데           Where, am, i…… 손가락으로 넘는 영속의 국경선 식탁 위엔 또 한 번 물컵이 엎어지고 말갛게 저녁은 가고 없어요 낯설기로 작정한 사람이 되어 물의 질주를 지켜봅니다

누가 저녁을 불러냈나요?

누가 저녁을 불러냈나요? 정혜선 저녁은 벌써 가고 없군요 신던 양말을 소파 밑에 벗어 놓고 기름 낀 하루를 구정물에 불려 놓은 채 어질러진 식탁 위로 허물어진 저녁은 물의 얼룩만 남기고 갔네요 온종일 나는 저녁 향해 저물었는데 캄캄해진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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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시인의 고향에 대한 짧은 글 누군가 내 고향이 어딘지를 물으면 나는 늘 두가지 선택지를 드린다. "긴 걸로 할까요 짧은 걸로 할까요?" 사람들은 대개 짧은 답을 선호하더라. 어디가 고향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길지만 그나마 짧은 나의 답변은 이러하다. “사실 전 고향이 어딘지 잘 모릅니다. 어린시절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요!” 물론, 긴 대답을 원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그러면 내가 목사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단박에 "역마살이 끼었다” 할 정도로 반복되는 삶의 기착지들을 하나 하나 읊어 간다. "여수에서 태어나서 군산과 보령에서 좀 살았습니다. 경상도로 옮겨서 구미, 상주, 도암, 김천 등지에서 살았고요. 그러다가 동두천을 거쳐 잠시 서울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다시 대전으로 옮겨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대전에서도 도마동, 도마2동, 부사동으로 옮겨 살았고 학교도 한 차례 전학했습니다. 초등학교 (당시엔 국민학교) 4학년 때에는 금산 복수면으로 옮겨서 3년간을 살았고 다시 대전으로 옮겨 입학했던 초등학교에 다시 전입을 했죠. 초교 마지막해 부터 시작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줄곧 대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했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통학하며 꽤나 길게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후엔 경기 양지에 있는 총신대학원에 잠시 몸과 마음을 기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리가 아파 휴학을 했는데 영장이 나왔습니다. 군복무를 좀 늦게 시작했는데 공군 학사장교로 진주로 입대해서 그곳에서 다시 교관생활을 수년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오산으로 전속을 했고 첫째를 낳았고 다시 안정리로 옮겨 전역을 했습니다. 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자 마자 신학 유학을 떠나 미 서부 남가주 LA에서 1년을 보냈지만 다시 동부 필라델피아로 학교를 옮겨서 그곳에서 9년을 살았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마무리한 후 메릴랜드로 둥지를 옮겨 담임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9년여의 목회를 해오던 즈음에 이제 다시 콜로라더 볼더로 사역과 삶과 사랑의 자리를 옮겨갑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전 고향이 어딘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딘지 모를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리움, 노스텔지나, 센쥬흐트 등의 정서가 제 삶과 글쓰기의 지향인 것은 확실합니다. 전 여전히 그 곳으로 발을 떼어 옮겨 가고 있습니다. 다만 길이 길어졌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 나그네의 삶은 목사였던 제 아버님 대에서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저도 목사가 되었으니 또 나그네로 사는 거죠"

누군가 내 고향이 어디인지를 물으면/이진영

이진영 시인의 고향에 대한 짧은 글 누군가 내 고향이 어딘지를 물으면 나는 늘 두가지 선택지를 드린다. "긴 걸로 할까요 짧은 걸로 할까요?" 사람들은 대개 짧은 답을 선호하더라. 어디가 고향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길지만 그나마 짧은 나의 답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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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수술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하면 자꾸만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한다 그래야 잘 보인다고. 또, 눈꺼풀 수술을 하라고 한다. 그래야 잘 보인다고. 나는 이미도 남의 허물들을 너무나 잘 보고 그것도 너무 크게, 너무 또렷하게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무엇이든지 잘 먹어서 소화력이 좋다고 한다. 크고 뚜렷이 보이는 저 잘못들을 보면 나는 저것들을 받아 소화하는 능력이 약하여 정신적으로 체할 때가 많은데… 그래도 눈꺼풀 수술을 해야 하나?

눈꺼풀 수술/김인기

눈꺼풀 수술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하면 자꾸만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한다 그래야 잘 보인다고. 또, 눈꺼풀 수술을 하라고 한다. 그래야 잘 보인다고. 나는 이미도 남의 허물들을 너무나 잘 보고 그것도 너무 크게, 너무 또렷하게 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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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오요한 이렇게 작은 달맞이꽃도 있었구나 하늘이 많은 텍사스 딸아이 집 뒤뜰에 밤이면 노오랗게 달처럼 밝게 피는 꽃 하도 귀여워 몇 포기 메릴랜드의 내 집으로 데려왔네 햇빛이 싫어 밤에만 피는 꽃 민들레처럼 작아도 어두운 세월에 피어서 암울한 세상 밝히려는 저 사랑스러운 꽃 그믐밤 봄 무릎 베고 유년의 되돌이 점 하나 찍는다

달맞이꽃/오요한

달맞이꽃 오요한 이렇게 작은 달맞이꽃도 있었구나 하늘이 많은 텍사스 딸아이 집 뒤뜰에 밤이면 노오랗게 달처럼 밝게 피는 꽃 하도 귀여워 몇 포기 메릴랜드의 내 집으로 데려왔네 햇빛이 싫어 밤에만 피는 꽃 민들레처럼 작아도 어두운 세월에 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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