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신사
김이듬
날 보러 여기까지 오다니
7, 8년 만의 동행이다
어스름한 강에서 번져오는 안개
이 사람은 폐에 생긴 병으로 죽다가 살아났는데
여전하다
조깅하는 여자 젖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슬그머니 내 손목을 잡기에
얼른 뺀다
"돈이나 벌지, 공부해서 뭐하냐."
"......"
"이제 시니 뭐니 그만 써라. 그거 써서 뭐하냐."
"......"
"인생 별거 없더라, 쓸데없는 데 피 말리지 말고 슬렁슬렁 살아라, 듣고 있냐?"
"......"
도망쳤겠지, 옛날 같았으면, 무슨 자격으로 간섭인가, 아아,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쳐, 아니 도대체 누구누구한테 잘못한 줄 알기나 하는가, 죽어버려라, 악다구니 치면서
"저기 보이죠? 저게 의암(義岩)이에요."
"뭐, 뭐 말이냐?"
"무식하기는...... 책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바위 말이에요.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참 내, 내 눈엔 그냥 바윗돌이구먼, 의암은 무슨 얼어 죽을......"
새가 날아간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자유롭게
아니, '자유롭게'를
재빨리
뺀다
새가 날아갔다 그냥, 제멋대로, 제가 알아서, '자유'에 얽매이지 않고
이제 남은 건 어스름
다행스레 나날이 내 눈도 마음도 침침해져가서
아버지가, 나름대로 멋을 내고 온 저 노인이
아버지로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