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과 없는것/김이듬
시인의 말
가진 게 없지만
시와 함께라서
제 삶은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어제 시골의 한 회관에서
이십대 신인의 수상 소감을 들었다
눈물이 났다
나는 이상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2023년 11월
담양 글을낳는집에서
김이듬
오늘의 근처
우체국에서는 178번이었다
나는 꼿꼿이 서 있기 어려웠다
병원에 갔지만 대기자가 많아
그냥 나와버렸다
복통과 메스꺼움을 참고 있다
은행에서 나는 41번이다
뽑은 번호표를 만지작거리며
무음 모드로 설정된 텔레비전을 본다
8번 경연자가 노래하고 있다
크게 벌린 입술과 일그러진 표정이
아파서 울부짖는 듯하다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래야만 하는 듯 검회색 외투 차림이다
머리를 푹 떨군 채 죄수들처럼
수감 번호가 불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
나는 창구 앞으로 가서 의자에 앉는다
유리벽 사이로 면회 온 이를 만나는 것 같다
희망대출을 받고 싶은데
안경 쓴 은행 직원은 신용카드 발급부터 권한다
오 퍼센트 남은 폰 베터리를 확인한다
넘버링과 카운팅이 연속된다
나는 옥바라지도 도주 우려도 없다
슬픈 눈동자를 숨겼지만
일곱 명과 눈이 마주쳤다
생의 한복판을 피해 생존 근처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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