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시문학회 글사랑방 토론하셨던 분들은 각별하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불타는 글자들
도서관에는 쓸데없이 많은 정숙이 근무하고 있다
시민은 그들을 선량한 직원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들은 국가에서 심어놓은 비밀요원이다
바닥에 매설된 요원 사이를 통과하지 못한 자들
힘차게 걷던 한 시민의 발목은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보라, 우리가 국가를 불렀을 때
국가는 우리에게 와 꽃이 되어주었다
캄캄한 꽃, 침통한 꽃이 피어 있는 국가
국가의 지하에서 자란 꽃들이 낭자하게 피어 있는 사월
깨어진 글자들이 유리 조각처럼 깔려 있는 사월
우리는 격실에 갇혀 서로에게 안부 묻고 출발하였으나
정숙에 적의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사월에 국가는 묵음이었으니
사월에 국가는 침대에 누워 꽃이나 피웠으니
이제 누가 창 깨고 들어가 침몰한 사월을 인양할 텐가
소곤거리는 사이에 정숙은 어김없이 나타나
엄숙하게 경고하고 바닥에 매복한다
경솔하게 움직이지 마라 제자리 지키고 지시에 따르라
아, 살아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불타는 글자를 종이컵에 담고 나는 행진한다
적막이 낭자한 이 사월에
망자의 동전
마른하늘에 꽃들은 골다공증을 앓았다
봄바람은 사교적이었으나
막상 봄은 굽은 척추를 펴지 못했다
이미 늙어 태어난 봄은 내구성이 약했다
그 일이 있고 교감은 나무에 목을 걸었다
봄에 종사하다 순직하는 꽃들이
실려 가고 실려 오는 삭은 수평선을 움켜쥐고
산 자들은 봄물을 울긋불긋 게워냈다
망자의 동전처럼 구름에 얹혀 있는 달
오싹하고 가벼운 달을 들고
사월은 곡우穀雨 지나 어디로 가는 걸까
흰 삼베에 감겨
나비 애벌레가 된 아이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