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원
김기택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원: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원주(圓周)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 시집 『소』(문학과지성사, 2005) 중에서
원래 이 시를 읽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현실이라는 말뚝에 매인 우리의 삶이나 요동치고 발버둥 쳐보는 일상의 분투에 대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이 시를 읽으며...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하나
개는 자유롭고
말뚝은 우뚝하니
맴돈다는 것도
정들어 아낀다는 마음이라 여겨
서로의 있음을 안심하고 바라보는 여유가 있기를
말뚝이여, 속박이 아닌.... 돌아보면 언제나 굳건히 있는 '내 편'이기를...
바라게 됩니다.
개는 제법 먼 곳까지 가서
돌아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