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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리 유감

이른 아침 스쿨버스 운행을 나가는 일이 벌써 꽤 익숙해졌다. 아침마다 동쪽 지평선에 떠오르는 햇살이 동공을 직격하는 일이 신비롭다. 난 아직은 교육과정의 막바지에 있어서 홀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건 터미널에서 나와 첫 학생을 태우기 전까지, 그리고 학생들을 다 학교에 내려준 후 터미널로 돌아오는 동안의 빈 버스뿐이다. 그마저도 선탑 운전사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선탑 운전사 로빈은 참 좋은 사람이라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에 일지를 받아들고 버스에 가면 이미 삼십여 분 전에 와서 점검을 마치고 문을 열어 나를 반겨줄 뿐만 아니라 선뜻 운전석을 양보해 준다. 그렇게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운전 시간이 주어진다.


로빈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면, 그를 아주머니라고 해야 할지 할머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히 나이를 물어볼 수는 없어서 어림잡아 나보다 열댓 살 위일 거라 짐작하고 있다. 손자, 손녀도 있는 할머니인데 한편으론 부모님 두 분도 모두 정정히 살아 계셔서 딸로서의 삶도 충실하게 살아낸다. 로빈의 부모님은 항상 정해진 시간, 같은 장소에 나와서 딸이 몰고 지나가는 스쿨버스를 기다렸다가 손을 흔들어 주신다. 이제 오늘로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한동안 아침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동기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하신단다.


로빈은 4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다. 왼팔에 새겨진 문신에는 산봉우리와 거기로부터 유려한 선을 그리며 날아서 착지하는 맹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어떤 그림이냐고 물었더니 그 산은 텔루라이드이고 남편과 사별한 후 그를 잊지 않으려고 새긴 것이라면서, 물어봐 줘서 고맙다 했다. 로빈이 버스 운전사가 된 것이 4년 전이라 했으니 남편과 사별한 시기와 얼추 맞는다. 하늘로 날아간 남편의 날갯짓에 준하는 땅에서의 그녀의 운행도 시작된 것이다. 누군과와 헤어져서 그를 기억하는 삶이란 함께하지 못하는 비애에만 젖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건강하게 자기만의 비행, 자기만의 주행을 해 가는 것이다. 문신 속 맹금과 운행 경로 곁 저수지에서 종종 마주치는 물수리가 내 상상력 속에서 겹쳐졌다.


이곳 콜로라도는 저수지가 많다. 땅에서 솟는 물이 없고, 산의 토질도 물을 머금고 품는 능력이 없어 그저 정상에 내려 얼어붙은 만년설이 녹아 계곡을 따라 흐를 뿐이다. 그래서 주 정부가 정책적으로 저수지를 여기저기 많이 만들어 가뭄과 산불을 대비하고 있다. 가호가 일정량 늘면 반드시 비율에 맞춰 큰 저수지 하나를 추가로 조성해야 한다. 덕분에 주변 생태와 어울리는 호수랄 만한 규모의 저수지들이 생겨났고 그 물속에 어류들의 아가미 호흡이 이어지고, 맹금류들의 서늘한 비행마저도 호젓한 풍경을 잣는 것이다. 종종 흰머리 독수리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작은 “오스프리”라고 부르는 물수리가 더 많다. 해치는 사람들이 없으니 보란 듯이 둥지를 짓고 살아간다. 이른 아침 햇살에 밤새 언 몸을 녹이기라도 하는 듯 둥지 가장자리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둥지 안으로는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의 머리가 언뜻 보이기도 한다. 버려진 전봇대 위에 내 두 팔로 원을 만들면 꼭 맞을 크기의 둥지를 틀고 바삐 나든다. 새끼를 먹이기 위해 이 웅덩이 저 웅덩이에서 어류를 잡아 나르는 것이다.


내 삶이 부지런해지면서 부지런한 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빈번하다. 이 물수리와도 몇 차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 거다. 이 녀석들의 몸짓이 새끼를 몇 마리 낳을지, 어떻게 먹여 살릴지, 다 큰 새끼들을 어떻게 독립시킬지 고민하는 일이었다면 그 눈마주침이 그리 감동적이진 않았을 테다. 다만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뒤끝 없이 떠나보내는 삶의 반복이 존경스럽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한 것은 ‘이런 생명들이 이토록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날갯짓할 때, 한없는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아 주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당당함을 마주하기 위해 너도 꽤나 부지런해야 하리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고작 얼마 전인데 매일 아침을 이렇게 햇살의 직격에 당당하게 응대하는 물수리의 하얗고 조막한 품이 있어 왔다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직 말을 안 해 주었지만, 로빈의 삶에서 난 이 물수리의 당당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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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정혜선
Sep 08

오랜만에 오셔서 근황을 이리 멋진 글솜씨로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올려주시면 재미있게 읽고, 멀리 계신 친척의 안부를 듣듯 안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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