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시인 <상추> 외 1편
상추/이경희
요즘도 통 잠을 못 잔다면서
꿈에라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하지 않았나
선잠이라도 자야 꿈을 꾸지
궁여지책으로
화분 채 보낸 상추는 어떻게 되었어
마음의 두께만큼 자랐겠지
늘 서성이는 자리에서 물을 주고
근심 어린 계절이
흐린 구름처럼 지나가네
마음을 풀어 바닥에 눕히고
푸른 상추잎 위에
불면을 쌈장처럼 얹어서
좀 먹어봐, 먹는 시늉이라도 해봐
오래된 내 경험이거든
곡절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상추꽃이 필 때까지만 기다려봐
똑같이 나워 가진 세월인데
안 돌아온다면 말라고 해
너를 단잠으로 데려다줄, 상추
그 푸르고 넓은 잎만 생각해
백 년 하고 이틀/이경희
어머,
언제 달의 얼굴이
저리 반쪽이 되었을까
하늘에서도 근심스러운 일이
더러 있었나 보네
자욱한 메밀꽃 사이로
백 년 하고 하루를 더 산 노모가
나지막한 밥상을 받고 있네
쌍으로 다니던 젓가락도 없이
며칠 전 자식을 먼저 보내고
받는 첫 끼 식사라네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주 느리게 노를 젓듯 평생의 밭으로 가네
탄식과 비통이 둘러쳐진 울타리 안에는
백 년 전 떨어져 죽은 별들이 살고
드문드문 가슴에 맺혀있던
세상의 풍경들이 심겨져 있다네
푸성귀 자라는 소리에
들리지 않던 귀가 말을 하고
잠시 기쁨인 듯
눈 한번 떴다 감은 세월이 백 년이라
빈 몸에 언제 저 많은 잡풀을 실었는지
어깨가 무릎이 된 지 오래인 몸이
주막처럼 서 있는 지아비의 묘를 지나
잠시 슬픔인 듯
아득한 눈길로 백 년 하고 이틀이 지나가네
*시향 제 19집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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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두편의 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