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칭에 관하여/윤석호
- 정혜선
- 2월 16일
- 1분 분량
영화가 시작된다.
1인칭과 2인칭, 착하거나 못 된 3인칭들
나머지는 배경이거나 세트거나 이름도 없고
상관도 없는 잡다한 것들, 4인칭이다
아무도 나에게 무례한 적 없다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구다
옷장이면서도 옷 한번 배불리 품은 적 없다
나는 행인이다
하지만 한 번도 갈 길을 간 적이 없다
거리에서, 편의점에서 사람들의 무표정은
배역을 받지 못해서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다시 1인칭이다
내 곁에는 2인칭도, 3인칭도 없다
그들은 각자의 방문 안에서 1인칭으로 살고 있다
나에게 그들은 4인칭이다 그들에게 나도 그렇다
문을 열고 입을 열면 저절로 인칭이 생기겠지만
4인칭끼리 말을 섞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 밤이면 마음속에 구덩이를 파고
참았던 것들을 깊게 묻는다
외로운 별이지만 아무 때나 빛날 수 없다
바람 분다고 누구 앞에서나 몸을 뒤집고
속을 보일 수도 없다
4인칭은
장르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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