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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자

쪽잠 자던 지하방이 힘겹게 눈을 떴다

뒤꿈치 닳은 작업화가 반쯤 감긴 새벽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갔다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알았지? 동생과 잘 놀고 있어)

양배추 인형처럼 말간 표정 둘만 어두운 둥지에 남겨두고

출근시간에 쫓긴 여자는

밖에서 문을 잠근 채 가파른 지하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낮은 곳에 갇힌 다섯 살 작은 어깨의 하루는

창문 밖에서 이따금 바윗덩이처럼 굴러 떨어지는 낯선 굉음에

세 살 배기 동생의 눈물에 자주 제 것을 더하곤 했다

한줌도 안 되는 아랫배 기척이 마렵지 않아도

한번도 타보지 못한,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떠올리며

번갈아 걸터앉아 보는 쓸쓸하고 차가운 요강

     

절망보다 쉽게 부러지는 낡은 비닐 장판 위로

값싼 요구르트처럼 쪼르륵 젖었다 이내 말라버리는 햇살에

아이는 재빨리 달려가 조그만 제 발바닥을 마주 대보기도 했다

 

아침에 사라졌던 작업화와 까맣게 탄 가슴이 서둘러 돌아오면

온종일 폐품처럼 방치됐던 어린 두 그림자가

젖은 품속을 주린 배로 파고들며 서럽게 울곤 했다  

     

그날 화재소식에, 불길함을 움켜쥔 여자는

얼마나 다급한 후회를 구겨 신고 한걸음에 달려왔을까 

그림자보다 검게 탄 몸을 뒤늦게 불러보며

실성한 듯 울던, 젊은 뻐꾸기 부부

세상에서 가장 캄캄한, 어둠에게 맡기는 탁란은 위험하다

     

아직 미완에 그친 어린 두 몸이

타다 남은 성냥 곁에서 고무처럼 녹아 있었다



     

허공에서 수직으로 사망한 지난여름의 천둥번개

그들이 땅으로 떨어져 모두 싹으로 돋아난다면 당신은 믿겠어요?

     

저 거대한 뿔은 우주가 방목해서 걸어 다니는 풀

풀과 나무는 대지가 낳은 식물이죠 (그리고 이건 사실 비밀인데요)

저기 들판을 달리는 동물들 모두 몸들이 낳은 다년생 풀이에요 

엘크, 나, 무스, 당신, 와피티 그리고 낙타사슴, 말코손바닥사슴…

눈빛도 순한 식물성이라 이름 끝에는 항상 연둣빛 풀물이 묻어나요

몸이 낳은 풀들의 이름을 노래하듯 부르다보면

바람도 순해져서 사슴처럼 초록들판을 달리는 메아리가 됩니다

엘크들 들판 곳곳에 서서 야생난초처럼 응앙응앙 흔들릴 거예요

위로 솟은 엘크의 풀잎 가만히 만져보세요 따뜻한 나뭇가지처럼

스윽- 뒤를 돌아봐도 풀은 풀, 괜찮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것들은 뿌리대신 네발로 흙을 쥐고 자라는 풀잎들,

모두 긴 목으로 우아하게 집으로 방향을 돌리죠

솜털 돋은 풀잎이 쓰윽- 당신을 바라볼 거예요 

선물의 집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탄절 카드처럼 큰 키의 풍경이 회전할 때 

광합성은 긴 뿔을 타고 초록초록 저장 되는 거죠

     

육백 킬로그램의 거대한 풀 한포기 완성되기까지

봄에 새순을 위해 엘크는

살갗이 트는 혹한 속에서도 혈관들을 불러 모아요

지난 계절 몸에 저장한 풀씨들을 쉬지 않고 운반해요

     

허공에서 수직으로 사망한 지난여름의 천둥번개

그들은 모두 땅으로 떨어져 새싹으로 돋아나요

     

누군가 오늘 숲속에서 한 포기 엘크, 그 상큼한 식물의 성장을 보았다면

순간 그의 등산화 속에서도 실처럼 흰 뿌리 내리고

움푹 패인 발자국마다 풀초풀초 풀물 고여 들고 있을 거예요

     

     




저무는 여섯 시의 부고(訃告)

철제 혓바닥을 비틀듯 히터의 온도를 높인다

저녁 해를 진동롤러처럼 누르며 둥근 매연이 지나간다

전자파를 명품가방에 넣고 먹구름이 지워버린 약속 장소를 확인한다

아무래도 이번 달엔 벤조페논을 더 장만해야겠어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초등학생 아이가 폐유를 밟고 건너간다

방부재에 중독된 식당들이 치사량의 농약을 무한리필 중이다


쉿,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죽여주는 임포섹스좀비타임!


가리비 전복 소라의 암수 성분이 짜릿하게 뒤바뀐다

미세 먼지 1+1이 냄비에서 수제비처럼 끓는다

여기, 후쿠시마에서 배송된 등 푸른 해안선 1인분 추가요

아직 멸종의 꿈을 이루지 못한 꽃게가

해물탕집 냉장고 속에서 손목을 긋는 저녁

기형으로 피어나는 비린내에 둘러앉아 화목하게 손발이 뒤틀리는 사람들

쇼핑가방을 양 손에 든 민소매 원피스가 페트병처럼

자취방 쪽으로 빠드득 구겨진다


난연재 덧칠한 식당에서 플라스틱 컵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정자감소를 한껏 즐긴 남자들이

(오늘은 내가 쏠게, 총알이 멸종된 하체에서 죽은 소의 껍질을 꺼낸다)

촤르르 비스페놀A로 코팅된 감광지영수증을 근사하게 받아들고

아스팔트 위로 제2의 폐기물처럼 나뒹구는 사람들


미세먼지에 급소를 물린 게릴라성 소나기가 의식을 잃고

배란이 삭제된 지렁이가 토양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모래조차 맹독성 전갈로 진화 중인 아파트놀이터에서

시한부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공동묘지 비석처럼 줄지어 선 신축아파트들 사이로

저무는 여섯시, 94F 마스크를 한 초저녁달이

해골처럼 둥근 조등을 내건다



워싱턴문인회 로고_edite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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