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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탁란


         

새벽이 되자

쪽잠 자던 지하방이 힘겹게 눈을 떴다

뒤꿈치 닳은 작업화가 반쯤 감긴 새벽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갔다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알았지? 동생과 잘 놀고 있어)

양배추 인형처럼 말간 표정 둘만 어두운 둥지에 남겨두고

출근시간에 쫓긴 여자는

밖에서 문을 잠근 채 가파른 지하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낮은 곳에 갇힌 다섯 살 작은 어깨의 하루는

창문 밖에서 이따금 바윗덩이처럼 굴러 떨어지는 낯선 굉음에

세 살 배기 동생의 눈물에 자주 제 것을 더하곤 했다

한줌도 안 되는 아랫배 기척이 마렵지 않아도

한번도 타보지 못한,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떠올리며

번갈아 걸터앉아 보는 쓸쓸하고 차가운 요강

     

절망보다 쉽게 부러지는 낡은 비닐 장판 위로

값싼 요구르트처럼 쪼르륵 젖었다 이내 말라버리는 햇살에

아이는 재빨리 달려가 조그만 제 발바닥을 마주 대보기도 했다

 

아침에 사라졌던 작업화와 까맣게 탄 가슴이 서둘러 돌아오면

온종일 폐품처럼 방치됐던 어린 두 그림자가

젖은 품속을 주린 배로 파고들며 서럽게 울곤 했다  

     

그날 화재소식에, 불길함을 움켜쥔 여자는

얼마나 다급한 후회를 구겨 신고 한걸음에 달려왔을까 

그림자보다 검게 탄 몸을 뒤늦게 불러보며

실성한 듯 울던, 젊은 뻐꾸기 부부

세상에서 가장 캄캄한, 어둠에게 맡기는 탁란은 위험하다

     

아직 미완에 그친 어린 두 몸이

타다 남은 성냥 곁에서 고무처럼 녹아 있었다

1 commentaire


정혜선
정혜선
26 mars

예전에 읽고도… 또 읽으며 울컥합니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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