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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고향이 어디인지를 물으면/이진영

이진영 시인의 고향에 대한 짧은 글


누군가 내 고향이 어딘지를 물으면 나는 늘 두가지 선택지를 드린다. "긴 걸로 할까요 짧은 걸로 할까요?" 사람들은 대개 짧은 답을 선호하더라. 어디가 고향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길지만 그나마 짧은 나의 답변은 이러하다. “사실 전 고향이 어딘지 잘 모릅니다. 어린시절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요!” 물론, 긴 대답을 원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그러면 내가 목사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단박에 "역마살이 끼었다” 할 정도로 반복되는 삶의 기착지들을 하나 하나 읊어 간다. "여수에서 태어나서 군산과 보령에서 좀 살았습니다. 경상도로 옮겨서 구미, 상주, 도암, 김천 등지에서 살았고요. 그러다가 동두천을 거쳐 잠시 서울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다시 대전으로 옮겨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대전에서도 도마동, 도마2동, 부사동으로 옮겨 살았고 학교도 한 차례 전학했습니다. 초등학교 (당시엔 국민학교) 4학년 때에는 금산 복수면으로 옮겨서 3년간을 살았고 다시 대전으로 옮겨 입학했던 초등학교에 다시 전입을 했죠. 초교 마지막해 부터 시작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줄곧 대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했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통학하며 꽤나 길게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후엔 경기 양지에 있는 총신대학원에 잠시 몸과 마음을 기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리가 아파 휴학을 했는데 영장이 나왔습니다. 군복무를 좀 늦게 시작했는데 공군 학사장교로 진주로 입대해서 그곳에서 다시 교관생활을 수년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오산으로 전속을 했고 첫째를 낳았고 다시 안정리로 옮겨 전역을 했습니다. 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자 마자 신학 유학을 떠나 미 서부 남가주 LA에서 1년을 보냈지만 다시 동부 필라델피아로 학교를 옮겨서 그곳에서 9년을 살았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마무리한 후 메릴랜드로 둥지를 옮겨 담임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9년여의 목회를 해오던 즈음에 이제 다시 콜로라더 볼더로 사역과 삶과 사랑의 자리를 옮겨갑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전 고향이 어딘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딘지 모를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리움, 노스텔지나, 센쥬흐트 등의 정서가 제 삶과 글쓰기의 지향인 것은 확실합니다. 전 여전히 그 곳으로 발을 떼어 옮겨 가고 있습니다. 다만 길이 길어졌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 나그네의 삶은 목사였던 제 아버님 대에서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저도 목사가 되었으니 또 나그네로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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