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선
- 2024년 4월 15일
일본에 살 때 부터 계간 시문학지 <포엠포엠> 에 에세이를 실었습니다. 올해 여름호 글을 쓰는데 전쟁과 종교를 제재로 삼는 바람에 선뜻 마무리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2022년 여름호에 쓴 글을 다시 읽어 봅니다. 그때는 저의 정서가 더 안정되고 행복했나봅니다. 아, 평화여, 어서 오너라!**

초록 엄지(Green Thumb)
-식물을 잘 키우는 타고난 재능
집이 갖고 싶다고 꿈 꿨던 적은 없다. 사회초년생 시절 대학선배랑 들렀던 인사동사주카페의 어둑한 조명 아래서 한자와 한글을 휘갈겨 쓰며 점쟁이가 말했다. 팔자에 집이 있어, 다만 투기는 하면 안 돼. 중학교 때 젊고 열정적인 사회선생님께도 배웠다. 내집마련을 인생목표마냥 악착같이 돈 모으기에만 급급하여 삶을 즐기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한국인들뿐이라고. 하지만 그리 뽐내며 말하기에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불안정한 부동산 시세와 팬데믹 탓에 집이란 얼마나 하늘같은 존재가 되었나.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영혼이라도 끌어 모아 집을 샀어야’ ⁕하는 후회로 땅을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손 쓸 재간 없는 현실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에겐 언제나 더 큰 꿈이 있었다는 것!
나는 땅이 갖고 싶었다. 너무 크지는 않게, 도시보다는 시골에.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릴 땅, 삽으로 이랑을 내고 거름을 주고 빛을 뿌려 그늘을 드리울 땅 품기를 언제나 소원했다. 나는 땅이 좋고 흙이 좋다. 잘 빗질된 흙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꽉 차오르며 심장이 메아리친다. 발가벗은 갓난아기를 품어 젖이 돌 듯 내 손길을 기다리는 흙을 매만지고 싶어진다. 간혹 공사장을 지날 때 편편히 다져놓은 붉은 흙을 보기만 해도 몰래 들어가 양파 모종 한 줄이라도 심어놓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촌스러움은 쉬이 벗겨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국 외교관과 결혼을 했더니 미국이 아닌 타국에 살 땐 정부에서 집을 준다. 그러니 그 옛날 점쟁이 말 대로 살 집 걱정은 없다. 다만 내 집이 아니고 정원사들이 주변을 관리하니 ‘내 땅’ 돌보는 재미는 덜하다. 미국 본부에 돌아와서야 돈 들여 살 집을 구하는데 첫 아이가 태어난 워싱턴디시의 타운하우스가 8년 전 첫 미국살림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월세를 내고 살았던 DC의 신혼집은 집주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잉글리쉬베이스먼트’인데 우리식 반지하에 가까운 구조의 집이었다. 방 한 칸에 거실 겸 부엌 한 칸이 전부였고 낮에도 전등을 켜야 활동이 원만했다. 좁고 어두운 도시의 방 한 칸이었지만, 집주인이 뭐든지 마음대로 심고 가꿔도 된다고 허락한 손바닥만한 화단 한 칸이 있어 나는 풍성한 도시의 추억을 수확했다. 이사한 이듬해 집 앞 정원은 깻잎, 고추밭으로, 좁은 뒤뜰은 허브가든으로 변신했다.
아들 둘로 식구를 불려 미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도시를 벗어나 정원이 있는 교외로 이사했다. 베데스다의 우드헤이븐이란 곳인데 동화 속 소녀가 금방이라도 앙증맞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날 것 같은 고풍스런 저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그 중 우리는 소박하고 실용적인 집을 골랐다. 등변사다리꼴의 부지에 얌전히 앉은 콜로니얼양식의 벽돌집이다. 집 뒤로 울창한 숲이 있어 뒤뜰에 앉아 있으면 삼림욕 부럽지 않은 숲 향이 전해온다. 그리고 집을 사기 전부터 내 눈에 쏙 들어온 미래의 내 텃밭. 집을 보러왔는데 뒤뜰 문으로 이어지는 담벼락 아래에 잔디와 마른 흙이 엉긴 빈 땅 한 줌이 오후의 햇볕아래 오수를 즐기듯 무방비로 누워있는 게 아닌가. 내 눈에만 보이는 보석을 발견한 기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메릴랜드에서 집과 함께 사계절을 샀다. 여름엔 잡초보다 잘 자라는 잔디를 제때에 깎아주느라 매 주말 부지런을 떨었고, 늦가을 들어선 낙엽 지는 정원을 갈퀴로 쓸어내느라 매일 오후가 바빴다. 과연 힘에 부치는 노동이라 아들 둘 고사리 손까지 보태 낙엽정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텃밭은 오롯이 나의 놀이터다. 쟁기를 빌려서 이랑을 만들었고 한파에도 잘 견디는 민트와 로즈마리를 먼저 심어두었다. 날이 완전히 풀리자 분갈이용 화분을 종류별로 늘어놓고 빈 이랑을 살피며 그저 흐뭇해하는 중이다. 맨 앞줄에는 부추와 쪽파를 심고, 고추와 깻잎은 널찍한 곳으로 심고, 타임, 오레가노, 방아풀도 잊지 않고 심어두어야지. 바질 씨앗을 종류별로 사 놓고 태국바질이 듬뿍 들어간 더운 국수를 후루룩거릴 생각에 벌써 군침을 삼킨다. 마흔 살이 되었고 가꿀 땅을 손에 넣어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늦게 한 결혼도 아니었는데 아직도 내 손 거치지 않고는 잠들러가지 않으려는 아들이 있다는 게 신비롭다. 삶의 이랑을 일구느라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가꾸고 키우는 일은 이제야 시작이라니. 올바로 키워내기란 또 오죽 힘든 일인가. 수확을 바라지 않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 자식농사란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호미 하나로 드넓은 들판을 마주한 팥죽할머니라면 이리 애태우지는 않으시겠지. 겨울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의 고랑은 꼭 매야했기에 더운 여름 할머니는 꿋꿋이 호미질을 하셨다. 나는 팥죽할머니가 되기로 하자. 삶이란 호미가 지나는 흙이란 생각이 든다. 호미질에 걸리는 돌이며 잡풀의 뿌리란 생각이 든다.
*이현승 시인 시 <자각 증상>에서_ 『대답이고 부탁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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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호
정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