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시티 휴양지에서
- soonyi5732
- 3월 22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29일
노순이
한국에서 살았던 세월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사는 동안 비행기로 2시간 반 거리에 이렇게 멋진 휴양지가 있는 줄 몰랐다. 2023년 8월 말경 워싱턴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한적한 멕시코만에 있는 이름도 이국적인 플로리다 파나마시티의 인렛 비치였다. 늘 생각하길 좋은 휴양지는 칸쿤이나 먼 하와이 정도였다. 칸쿤에는 도착만 하면 숙식과 음료 모든 것이 포함된 올 인클루시브 패키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그곳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곳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적한 플로리다의 파나마시티 공항에 내린 큰아들네의 다섯 식구, 둘째 아들네의 세 식구, 우리 부부까지 총 열 식구는 죽 펼쳐진 들판의 주차장에 세워진 렌터카 중에서 우리가 임대한 차량의 번호를 확인하였다. 열쇠가 꽂혀 있는 렌터카를 타고 20여 분 만에 씨 크레스트 비치 Sea crest beach 임대 하우스에 편안하게 도착했다. 주방 겸 거실엔 응접세트와 열 명이 족히 앉을 식탁이 있었는데 기둥 하나 없이 뻥 뚫려 있고 온 식구가 다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넓어서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1층에는 방이 하나 있어서 당연히 우리 부부방으로 결정됐다. 2층엔 두 아들네 식구가 쓸 수 있는 방이 충분했다. 출입구 오른쪽의 세탁실에 있는 여분의 커다란 냉장고에는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뒤에 올 이들을 위해 남겨 둔 음료수 박스와 맥주까지 들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실 밖에서는 울창한 나무들이 서로 팔을 쭉쭉 벌려 포옹하며 그늘을 만들어서 더위를 식혀 주었다. 천장이 시원하게 높고 멋진 렌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풀고 둘째 아들이 인터넷으로 오더한 점심을 먹은 후에 간단히 장을 보러 나갔다. 슈퍼마켓에서는 캐셔들이 손님을 맞으러 계산대 앞까지 나와 있었다. 우리를 웃음으로 맞은 뒤 계산대로 돌아가 계산을 해 주는데 상냥하기 그지없다. 식료품을 차에 다 싣고 나니 어느새 마켓 직원이 나타나 웃으며 카트를 받아 끌고 간다.
비치 오피스에서 휴양객들에게 나누어 준 식별 밴드를 팔목에 하나씩 찬 우리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트램을 불러 타고 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 양쪽으로 야자수들이 운치 있게 늘어선 모습이 이국의 정취를 한층 더해 준다. 짙은 에메랄드빛 바닷물에 햇살이 닿아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다. 트램은 무료로 탈 수 있지만 팁으로 낼 현금이 없는 고객을 위하여 Venmo QR코드가 찍혀 있다. 스캔만 하면 계좌 정보가 떠올랐다. 잔돈 없다는 말은 못 하게 되어 있다. 바닷가로 들어가는 입구는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근방의 모든 해변은 프라이빗 비치라 트램이나 도보로만 다닐 수 있고 승용차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단다. 아무리 그래도 바닷가 모래사장은 모두와 공유해서 해변을 걸어 다닐 수 있게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다닐까? 퍼블릭 비치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두셋 있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적한 이곳 바다에는 질주하는 보트도 없고 영업용 물건들도 일체 없었다. 단지 임대용 우산과 의자만 있는데 예약을 못 한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식구가 다 들어갈 수 있는 천막과 의자뿐이고 나흘 빌리는 데 1000달러이며 그나마도 이틀 후에나 대여가 가능하단다. 빌릴 천막이 없었기에 다행이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 여행 비용이 더 저렴하다며 제주도에 가지 않고 동남아로 간다더니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제 6살, 4살, 2살짜리 어린 손자들이 수영을 하니 같이 물에 들어가서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폭염 속 바닷물은 따뜻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을 즐기다 보니 해 지는 해변에 캠프파이어가 준비되고 있었다. 석유 횃불이 켜지고 젊은 아가씨들이 둘레에 모여 앉기 시작하였다. 결혼을 앞둔 아가씨의 마지막 셀레브레이션이란다. 석양이 내린 바다에 사람이 별로 없으니 해수욕장이 아닌 것 같이 허전하다. 이웃과 더불어 즐기는 빼곡한 목욕탕 같은 퍼블릭 비치가 우리에게는 훨씬 정겨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는 어린 손자의 수영복에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와! 멕시코만에 고기가 많다더니 수영복으로도 고기를 잡는구나. 이 바다의 아래쪽은 트여 있고 위쪽은 육지이고 오른쪽은 플로리다반도이다. 물고기 떼는 시계 방향으로만 도는 습성이 있어 고기가 멕시코만에 들어오면 외해로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은 어종의 보고이다. 이 지역의 어부들은 고기를 주문받고 나서 잡으러 간단다. 아주 싱싱한 활어 어항인셈이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왔다. 손주들을 직접 키우며 육아를 도와주고 싶지만 아들들은 자기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나에게도 일이 따로 있으니 주말이나 생일 등 가족 행사를 할 때만 만난다. 이번 여행은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이국땅에 살며 늘 생각하건대 가족들이 함께하는 여행이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부터는 우리 부부가 주선해 정기적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앍는 사람이 마치 함께 여행을 하는 듯 느꼈고 가족들과의 행복한 여행이 그림처럼 표현되어 글 읽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