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혼자 살이

혼자살이

 

                                                                                   강혜옥

의자야, 내게 온나

가만히 서 있도 말고 이리 온나

내 다리가 지금 딱 물젖은 솜이다

조금만 씻고 나올라 캤는데, 고마 힘이 빠져 몬 나오겠다

 

힘 잃은 사지는 욕조에 갇히고

텅빈 아파트 벽이   외침을 삼켜 버린다

내일 간병인이 올 때까지 찾아 와 줄 이가 없다

 

열린 화장실문 입구에 휠체어만  마주 서 있다

이리로 온나

체어야, 이리 온나

내가 지금 니 밖에 없다

 

휠체어는 좀 움직일듯하다가 주문에 걸린듯 멈추더니

되려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내가 오라고? 할 수만 있으면 벌-써 갔지

그래도 해 보까?

눈물이 찔끔하도록 배에 힘을 주고

애벌레처럼 꿈틀거려 욕조를 벗어 났다

 

겨우 침대에 누워 안도의 숨을 내 쉰다

그래도 내 몸을 씻었고,  잠자리로 왔으니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


Living Alone

                                                              by Kang Heaock

Chair, come to me.

Don't just stand still, come here.

My legs right now are like wet cotton.

I just wanted to wash up a bit but suddenly I felt weak all over.


My weakened limbs are trapped in the bathtub.

The empty apartment walls swallow my cries.

There's no one to come find me

Until the caregiver arrives tomorrow.


At the open bathroom door,

Only the wheelchair stands facing me.

Come here, Chair, come here.

Right now, I have no one but you.


The wheelchair seems to move a bit, then stops as if spellbound,

And instead gestures for me to come.

Come to you?

If I could, I would've gone already.

You mean I should give it a try anyway?


With tears trickling,

I muster strength in my belly, and

Wriggle like a caterpillar 

Finally, to get out of the bathtub. 


Barely lying on the bed, I sigh with relief.

It was considered a decent day after all I washed my body

By myself and went to bed for another day.


감사의 기억

 

                                                                          강혜옥

폭설이 차선을 지우더니 아예

차도마저 삼켜버린 귀가길에서

앞서가던 차들은

미끄러져 눈 구덩이에 빠지거나

아예 진로를 포기하고 갓길에 서 버렸다

 

날은 어둑해지고 눈발은 굵어지는데

내 앞의 차는 비상등을 켜더니 앞으로 서행을 시작했다

그 저녁, 눈세상 속에서 그의 비상등만 내 시야를 메웠다

 

그 뒤를 놓칠세라 따라 가다보니

마침내 내 동네 어귀까지 왔다

집 골목에 들어가려 좌회전 깜빡이를 켜자

앞차는 그제사 비상등을 끄더니

계속 눈속을 헤치면 운전해 갔다

 

안전을 기도하며 지켜보는그 차 뒷모습에

문득 힘들 때마다

앞장 서주던 너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고인돌

                                          강혜옥

그것은

남도 고창  산 기슭에 

수천개의 거석들로 이어진

긴 이야기 띠

 

아직 혈관이 살아 펄떡이는 

전설의 상판을 이고 가는 

선사시대의 전령들

 

상형문자 그린 검자루는 누가 준걸까

구석기인들이 빚은 빗살무늬 항아리

그  부서진 조각에 적힌

오천년 표식은 누구에게 남긴 연서일까

 

돌이끼 검버섯처럼 번져간 고인돌은

옛도시의 낙석처럼 하찮아도

그 아래 깊숙히 봉인된 제사의 의식들은

아직 기품있게 불리워질 노래를 짓고있어

그 앞에서 오래 

귀 기울이다

 

*전라남도 고창군 고인돌 유적지: 구석기- 청동기 시대의 선사 문화를 엿볼 수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 한국에는 전세계 6만여기의 고인돌 중 약 4만여개가 보존되고 있으며,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2천여기가 넘게 모여 있는 세계 최고의 고인돌 유적지로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귀중한 유적.

 

 

 

 

시외 버스 타러 갈래?

                                                                  강혜옥

시외버스 타러 갈래?

성긴 싸락눈이 가슴 얼리는 날

포항 가던 차창의  습기를 기억하니

 

눈에 띌세라 카페 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터미널 대기실의 들뜬 소란 속에도 선명히 들리던

설레임의 맥박소리

 

경주를 지날 쯤해서는 벌써 영일만에서 부는

바닷 냄새가 났다

 

아, 포항가고 싶다

그 시외버스를 타고

말이 필요없던 너와 함께

기억의 파티를 열고싶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꽃의 미학

권귀순 이 꽃을 밟아도 되나 분홍으로 흥건한 길 위에서 머뭇거린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별들이 진 거리에서 꽃들이 속절없이 나무를 떠나고 있다 이 꽃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 디딜 틈 없는 꽃잎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열매를 꿈꾸며 찬바람 속...

 
 
 
미국에 이민 온 캐나다 기러기

노순이     봄바람이 꽃잎을 날리며 유혹한다. 집 근처 호숫가로 산책하러 나갔다. 내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 지역 동네 주변에 둘레 1.5km 정도 되는 리오 호수(Lake Rio)가 있다. 봄이면 호수 둘레길은 봉긋봉긋 피어나는  꽃과...

 
 
 

1 Comment


정혜선
정혜선
Mar 22

경험들이 살아있는 시편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Like
워싱턴문인회 로고_edited.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