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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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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정혜선


한 아름 둘레 안에 갇힌 뒤론 수직만 생각했다.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일

개들이 갈겨주는 의리의 오줌을 밑거름으로

도시의 아우성이 밀어닥치는 복판에서 

후퇴하지 않는 전사로 사는 일


피 흘릴 줄 모르는 나는

갈증에 겨운 태양이 머리꼭지를 눌러도

어퍼컷으로 덤프트럭이 아래턱을 후려쳐도 

싱싱한 자동차 매연을 휘감아 곧추 수직으로 들이박았다 

들이박는 일만 생각했다


그 밤 느닷없는 포옹에 사로잡히기 전까지는


팽팽해진 밤공기에 전신줄이 곤두서는 고통 속

누군가 차가운 내 몸에 머리를 놓고 괜찮다, 괜찮다 기도문을 읊어 주었다

무너지고 성내고 곤죽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내 발에 입 맞추었다

오렌지환타가 흘러 개미행렬이 지나던 자리가 성지순례의 길이 되었다 


밤의 무늬가 선명하여 나는 절로 전신(傳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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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Hea Ock Kang
2024년 5월 01일

정혜선님,

초록엄지 그리고 화장지의 말을 잘 읽고 갑니다. 명주수건에 숨겨서 전해 준 홍시같이 맛갈난 시어에 몇번이고 거듭 읽었습니다.


강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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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정혜선
2024년 5월 01일
답글 상대:

관심 갖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혜옥 시인님 쓰신 글도 읽어 보고 싶은데… 다음에 꼭 시와 시 토론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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